Hikikomori Diary

Icy Blue- Nathan Chen (1) 본문

남의나라글/애증의 겨울스포츠

Icy Blue- Nathan Chen (1)

지나가던 과객 2021. 5. 6. 19:31

예일대 학생이 운영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 The 64 Pack with RJ Kranz의 네이든 인터뷰 번역입니다.

영어자료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 인터뷰는 정말 친구랑 수다떠는 것 같은 분위기로 색다르게 재미있는 것 같아 손대봤네요.

분량이 분량이니만큼 세 번 정도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근데 과연 언제 다 할까...?)

 

그런데... 미국 남자애 둘이 웅얼웅얼 다다다다... 하니 알아듣기 힘들어서 원 ㅠㅠㅠㅠ

안들리는 부분은 대충 의역... 생략... 했으며, 당연히 잘못 알아들은 거, 오역 등등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데로 옮기지는 마시고 여기서만 봐주세요 :) * 허가 없는 이동/전재 금지. 일부 인용일 경우 반드시 출처 명기해 주세요.

 

방송 링크는 여기: 

www.buzzsprout.com/1587631/8448545

 

Icy Blue - Nathan Chen - The 64 Pack with RJ Kranz

In this episode I interview Nathan Chen. Nathan is arguably the best male figure skater in the world right now. He's a 3x World Champion, 5x US Champion, 3x Grand Prix Final Champion and also a student at Yale. He holds multiple records in his spo...

www.buzzsprout.com

 

친구: 시간 내서 와줘서 고마워.
네이든: 물론 와야지. 불러줘서 고마워.

너를 알기 전에 내가 피겨를 접한 건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가 거의 다거든. 그래서 내가 물어보는 게 아마 다 상당히 기본적인 것일 거야.
괜찮아 괜찮아. 필요하면 내가 풀어서 설명해줄게.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남남 페어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ㅋㅋ)

배경부터 시작했으면 하는데, 유타 솔트레이크 출신이고, 고등학교는 캘리포니아에서 나왔으니까 두 군데서 살았던 거지?
응 맞아

캘리포니아 어디?
처음에는 캘리포니아 레이크 애로우헤드로 이사했어. 산속에 있고 좀 고립된 데인데, 거기서 라파엘 아루투니안 코치랑 훈련하게 됐는데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어. 라파엘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코치 중 하나고, 정말 대단한 기회였어.

아주 어릴 때, 세 살인가 그 때 스케이팅을 시작했고,너희 어머니가 체조나 발레, 하키처럼 다른 스포츠에도 보내셨다고 인터뷰에서 봤거든. 스케이팅을 오래 하게 된 게 제일 잘 해서 그런거야, 아니면 제일 좋아해서 그런거야, 아니면 이 둘이 섞인거야?
섞였다고 생각해. 뭣보다, 너무 어려서, 세살이니까, 제대로 된(formulated) 결정을 할 수가 없잖아. 많은 부분은 우리 가족한테서 나왔어. 부모님이 아 너 이거 잘하니까 계속 이거 해야된다 그런 거. 분명히 꽤 일찍부터 스케이팅에 대한 사랑 같은 게 있었어. 빙판에 들어가자 마자 나가기 싫어서 계속 있었거든. 거기 있는 게 정말 좋았고, 너무 좋은 재미있는 방과후 활동이었어. 그리고, 다른 종목이랑 비교하면,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제일 즐겼던 것 같아. 다른 종목도 여러가지 좋은 면이 있는데, 체조 같으면 많은 남자 팀메이트들이 있고, 하키같은 다른 팀경기도 재미있었어. 하지만 스케이팅을 제일 잘 했던 것 같고. 어렸으니까 제일 빨리 늘었던 것 같아. 기본적으로는 이거 같네.

아까 말했는데, 체조나 발레 같은 다른 종목의 어떤 측면이 스케이팅에 도움이 돼?
그러니까, 어릴 때 다른 종류의 스킬이나 다른 종류의 움직임(movement)을 배우면, 새로운 걸 해 보는 건 절대 도움이 돼. 그리고, 다른 코칭 방법에서 배우는 것도 있어. 코치들이 어떻게 학생들하고 상호작용하는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교정을 받는지,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 심리적으로 운동선수는 어때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 같아. 스케이팅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다른 종목에서는 너무 많은 일과 많은 뉘앙스가 있는데, 해보지 않으면 파악하지 못하게 되거든. 모든게 다 함께 분명히 도움이 됐지만, 핵심은 적어도 체력fitness을 키워 준 것 같아. 세살때는 그냥 막 했지만 9살 10살때부터는 스케이팅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된 오프아이스 트레이닝을 해보지 못했고, 트레이너가 있거나 오프아이스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걸 해보지 못했거든. 하지만 지금의 엘리트 선수에게는 명백히 더 중요한 요인이야. 적어도 하키를 했고 체조를 했기 때문에 다른 여러가지 근육 코어를 단련할 수 있었어. 동시에, 내가 재밌게 했고 강해졌지. 그러니까, 두 가지 목적에 도움이 됐어.

처음 대회에 나간 게 2003년 쯤이고, 나이가 돼서 주니어 내셔널에 올라가게 됐지? 아까 10살 쯤에 스케이팅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 때가 네가 주니어 내셔널이 최종목표가 아니라고 알게 된 때야? 왜냐면 스캇 해밀턴 인터뷰를 들었는데, 거기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주니어 내셔널에 나가는 게 선수생활의 목표(끝)라는 얘기가 나왔잖아. 너에게는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좋은 지적이네. 내가 어릴 때는 지금 있는 위치를 꿈을 꾸기는 했어. 올림픽에 나가고 올림픽에서 경쟁하고, 내셔널에, 세계선수권에 나가고 그런걸 꿈꿨지.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나랑 같이 훈련했던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가지 못했거든. 아무도 그만큼 못 갔어. 링크는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올림픽 때문에 2002년에, 아니면 좀더 먼저 지어졌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솔트레이크에는 큰 스케이팅 육성 프로그램(really huge skating development)이 없었어. 사람들이 들고 나기도 했고, 내셔널이나 그런데 나가고, 때때로 세계선수권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쉘 콴이나 스캇 해밀턴 같은 빅네임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글쎄, 내 준거의 틀(frame of reference)에서 벗어난 거였기 때문에,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 하지만, 부모님 등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고, 이 종목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면서, 가고 싶었어. 내 꿈이었어. 올림픽이 열린 솔트레이크에서 자랐으니까. 올림픽은 선수들이라면 다 가고 싶어하는 빅 이벤트야. 그래서 나도 선수생활 중에 가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실현될지는 몰랐어. 그리고, 솔직히, 부모님이 원하시는 걸 따른 면도 있는데, 대학에 가기 위해, 그리고 인생 2막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거든. 아마도 영원히 스케이팅을 할 수는 없으니까 활용하면서 좀 거리를 두기도 해봐라 하셔서 알았다고 하고는 많은 시간을 링크에서 보냈지. 아까 말했듯이 10살때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세 살 때부터 매일 링크에서 적어도 2시간은 스케이트를 탔어. 세 살 때부터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더 경쟁력이 생기고, 이론적으로는 올림픽에 갈 수 있는 위치에 나 자신을 놓았던 것 같지만, 그것도 16살 때 피겨스케이팅 쿼드를 랜딩하고 나서야 그렇게 됐어. 쿼드는 뛰어서 4바퀴 돌고 내려오는 건데, 기술점이 커서 이걸 할 수 있으면 적어도 출전권을 놓고 겨룰 수 있게 되고, 이기고 싶으면 그걸로 싸워야 돼. 그런데 나는 16살 때 이미 쿼드를 두 개 뛰었으니까, 그래, 이제 기술점 재료는 있지만 내가 진짜로 경쟁력이 있는 위치로 가기 위해서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16살에 쿼드를 랜딩하기 전까지는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래서 넌 가능하다는 걸 실감했고 많은 걸 이뤘지. 세계선수권이나 내셔널 이나 너한테 특히 의미있는 대회가 있니? 첫 대회라거나, 대회 전 상황이라거나?
음… 시니어 레벨로,  - 제일 높은 레벨을 시니어 레벨이라고 부르거든 - 올라간 다음부터는 모든 대회가 그 다음 다음 다음으로 발전하는 대회 같았고, 모든 대회에서 나는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발전해서 그 지점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리고, 아마 (숨쉬고)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처음으로 메달을 딴 내셔널이었던 것 같아. 그 대회에서 3등을 했는데, 내가 믿기에 두 프로그램 합해서 쿼드를 6개 들고 갔어. 그리고 그 당시에 다른 선수는 누구도 그런 걸 못 했는데 난 여전히 3등으로 끝났지. 그게 뭔가 각성의 포인트(wake-up point)였어. 왜냐면, 난 해야 될 걸 다 했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했는데, 내가 있고 싶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게 과연 가치가 있을까? 게다가 그 다음에 내가, 대회 끝난 다음에 쇼같은 갈라를 하거든, 그 쇼에서 고관절을 다쳤어. 6개월이나 빙판에 못 서고, 경쟁 순위에서 내가 있고 싶은 레벨에 있지도 않고, 게다가 대학 준비도 해야 되는 시기라서 그쪽을 알아볼까 이걸 계속해야 될까 그런 기분이었어. 그 때 나는 여전히 강하다고 느꼈고, 여전히 이 종목에서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걸 이렇게 오래 했는데 정말 버리고 싶지 않았어. 세살에 시작해서 그때 16살이었잖아, 그러니까 13년 넘게 훈련한 건데, 그걸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좀더 해보기로 하고 재활(rehab)하러 가서 조금, 아 재활은 물리치료 얘기야 (친구: 응 알았어). 물리치료를 받고, 트레이너가 생겼어. 올림픽패럴림픽 위원회, 아니다, 올림픽 패럴림픽 센터, USOPC가 운영하는, 거기에 보내졌는데, 거기서 트레이너를 소개해 주고 두어 달 머물면서 회복하고 온아이스 연습을 재개할 수 있게 장소를 마련해줬어. 그리고 그 때까지 정말 체력관리 트레이닝(strength and conditioning)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새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더 강해진 걸 느꼈고, 온아이스 훈련을 재개했을 때는 새로운 요소를 빨리 습득하게 됐어. 그때 부상 전과는 전혀 다른 레벨이라는 걸 느꼈고, 그 전환기를 가졌던 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큰 요인이었어.


 

아.. 이거 참.. 다다다다 설명하다가 앗!하고는 머글 친구 위해 풀어서 설명해주는 네이든 너무 귀엽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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